간만에 국내 소설을 한편 손에 들었다. 1/3을 읽을 때까지 느껴지는 낯선 느낌... 부제 "사랑아, 강을 건너지 마라"를 보고 사랑이야기고 결국은 헤어지는 결말이겠거니하는 막연한 상상을 했다.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작가의 관심은 사람이 아니라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대학을 들어갔던 90년대 초반 세상은 변하고 있었다. 80년대를 대표하던 민주화 항쟁도 끝났고, 피튀기던 노동항쟁도 거의 막바지였다. 학업을 위해 상경하던 나에게 부탁하던 어머니 말씀. "데모 같은데 휩쓸리면 안된다. 공부만 열심히 해" 10년도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에 와서 그때를 생각하면 기우였다는 생각을 해본다. 참여하고 싶어도 들어갈 수 있는 데모도 없었고 워낙 혼자 노는 걸 좋아하게 키워놓으셔서 인지 그나마 학내 조금 남아 있던 불씨 근처도 가보지 못했다. 그저 그런 생활을 이어가던 내게도 어김없이 입영영장이 날아들었고 그런 군생활중 지금은 둘도 없는 친구가된 후배녀석에게 책한권을 선물 받았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최영미"
대학 입시 덕분에 읽었던 몇몇의 시를 제외하고는 시라곤 읽어본적이 없는 나였지만, 또 운동권은 곁에도 가본적이 없는 나였지만 왠지 모를 그 시절에 대한 향수가 느껴진달까... 아마 겪지 못했으니 향수라는 표현보다는 간접 경험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다. 내가 겪지 못했고 간간히 선배들의 입을 통해 그리고 부모님 곁에서 지극히 우파적 성향의 TV를 보며 보았던 그 시절을 살아온 누군가의 이야기가 담백하게 녹아 들어 있었다. 어쩌면 80년대를 겪은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유일한 통로였었다. 소설 "공무도하"를 이야기하며 그때가 떠오르는 것은 똑같이 시대를 담담히 그려내고 있어서 그렇지 않은가 싶다.
처음 소설을 읽어가며 여기저기서 불편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주인공이 신문기자여서 기사를 서술하듯 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 생각을 할만큼 철저하게 6하원칙에 맞는 기사와 같은 문체. 게다가 일반 소설처럼 자연스럽게 인물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물을 등장시키고 그 인물에 대해 설명이 따라오는 식이었다. 옛날 소설의 느낌이랄까... 게다 그 설명 조차도 기사같은 문체로 구성되어있다. 처음 책을 읽으며 '왜 이책이 추천코너에 올라왔을까.'하는 생각이 계속 맴돈다. 문체도 이상하고 등장인물도 이상하고... 하지만 중반을 넘겼을 때쯤 눈치를 챘다. 이소설의 주인공은 신문기자도, 출판사에서 일하는 그녀도 아닌 바로 이 시대였다는 것을. 보통 소설은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지만 이소설은 사건이 먼저 있었고 그 사건에 등장인물이 끼워맞춰있다. 심지어 그 사건을 주도면밀하게 기술하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주인공에게 신문기자라는 직함을 부여한게 아닐까하는 생각까지도 해본다.
21세기가 시작되며 시대는 변했다. 노동운동을 통해 핍박받는 현실을 탈출하려했던 노동자들의 조직은 마치 기득권세력인냥 변모해갔고, 세상 여기저기서 환경보호의 목소리가 넘쳐나고, 그러나 시대가 변했을 뿐 여전히 존재하는 개인으로써의 약자와 강자, 그리고 20세기 후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대중이라는 강자. 소설 중반부 이후부터는 작가가 말하는 소설속의 세계가 내가 산 지난 10년과 너무나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웃기는건 그 사건 어느것 하나 누가 옳은지 판단하기 참 모호하다. 소방관일을 하다 화재현장에서 물건을 훔친사람정도가 유일한 죄인이라면 죄인일까...
지난 10여년 안타깝게도 회사에 틀어박혀 세상의 모습을 자그마한 TV 프레임을 통해서만 보아왔던 내게 그의 소설은 참과 거짓이 모호해진 세상, 80년대 그렇게 열망하던 민주화 그 이후 삶을 다시한번 떠올리게 만든다. 권력의 뒤안길은 돈잔치라는 것을... 그리고 그 돈잔치속에 자그마치 10년이라는 시간을 자본주의의 전사로 살아온 내 삶을 다시한번 돌아보게 만든다.
소설로써의 "공무도하"는 그다지 재미있는 소설은 아니다. 그렇다고 뭔가 문제를 제기하지도 않는다. 다만 맨마지막 작가의 말을 통해 두 종류의 사람에게 조용히 묻고 있다. 나와 같이 그 시대를 세상의 중심에서 그러나 눈을 감은채 살아온 사람에게 소외된자와 압제된자에서 탈출한 우리의 모습이 협오스럽지 않을가하고... 그러니 함께 스스로 맑게 소외되지 않겠냐고..
"공무도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라' 라는 그 제목. 어쩌면 나를 향한 작가의 외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더 나가지 말고... 그냥 맑게 소외되어 다시 한번 시작해보지 않겠냐고...
재미없는 그러나 의미있는 책과의 시간이었다.
분류없음2009/12/07 10:58